2022.04.17 구역공과 - 중직자가 누릴 나의 24 (시 103:20-22)

구역공과
작성일
2022-04-17 19:08
조회
9404

 ▷ 중직자의 24는 무엇일까? 시편 103:20, 21, 22이다. 정확한 말씀을 붙잡는 것이 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다(21절). 그것 가지고 모든 곳에서 예배하게 된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것이 중직자에게 제일 중 요한 것이다. 

▣ 서론 

1. 속국 

예수님 당시에 로마에 속국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말하는 복은 복이 아니라고 얘기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장 고난 당하는 시기에 그리 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우리 앞에는 축복과 저주가 늘 있기 때문에 말씀 정확하 게 붙잡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2. 코로나, 4차산업, 영적 문제 

코로나 시대가 왔다. 이제 4차산업이 열리고 있다. 거의 암호화폐를 쓰는 시대가 왔다. 이런 시대가 왔는데 영적 문제는 많아졌다. 그래서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3. 237, 성전, 플랫폼 

지금 237시대가 왔다. 아무리 북한이나 소련처럼 거부해도 237시대는 온다. 이 때 하나님께서 성전을 주신 것이다. 앞으로 치유, 서밋, 렘넌트 운동하기로는 최 고의 장소다. 지금 기도하고 준비해야 되는 것은 237에 헌신할 수 있는 플랫폼 을 만들어야 되는 것이다.


천사 

천군 

천군 천사 

언약 

여정 

목표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붙잡으니까 하나님이 하늘의 천사를 보내사 말씀을 이 룬다고 되어 있다. 또 여기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까 천군을 보낸다고 되어 있다. 이 언약을 붙잡고 오늘 예배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에 있는 너희여” 천군, 천사 두 개를 다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도 응답을 제일 많이 받은 다윗 이 한 고백이다. 이것을 봤을 때 정확한 언약이 붙잡아지고 저절로 여정이 나온 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니까 목표가 있는 것이다. 

▣ 본론_ 5가지 변화 

1. 업 

업이 바뀌게 된다. 업이 바뀐다는 말은 직장과 직업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요셉 의 주업은 총리가 아니고 부업이었다. 요셉의 주업은 세계복음화인데 그것 하기 위해서 총리가 된 것이다. 다윗의 주업은 왕이 아니었다. 부업이었다. 오바댜의 주업은 엘리야의 제자다. 그것 하기 위해서 신하를 한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부업이다. 주업은 세계복음화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업이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2. 기도 - 보좌 

기도가 바뀐다. 전에는 세상적인 것, 육신적인 것, 기도했다가 ‘천사, 천군, 천군 천사’ 이 답을 알고 나니까 완전히 영적 비밀 누리는 기도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 다. 보좌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기도다. 예배드리다가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 아 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3. 시선 - 흐름 

시선이 바뀐다. 이제 기도가 바뀌고 나니까 나의 보는 눈이 달라진다. 보좌에 대 한 7흐름이 있는데 이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 절대로 망하 지 않는 10가지 비밀, 흔들릴 필요 없는 10가지 발판, 5가지 확신, 9가지 세상 바꾸는 비밀, 62가지의 평생 응답의 삶, 그리고 교회, 이것이 7보좌의 흐름이다. 

4. 생각 - 답, 갱신, 기회 

가장 중요한 생각이 바뀐다. 3단체와 모든 종교에서는 나심의 생각을 딱 심어주 는데 망하는 것이다. 생각이 달라지니까 모든 문제는 답이 보이고, 모든 어려운 

것은 어려움이 아니고 전부 바꿔야 되는 갱신이고, 위기는 전부 기회가 된다. 기 도 응답 하나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 능력 하나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5. 마음 - 감사 

마음도 바뀌는 것이다. 이때 나오는 것이 감사이다. 

▣ 결론 


현장 

→ 재창조 

이것을 가지고 현장에 가면 재창조가 일어난다. 병든 사람이 치유되기 시작하 고, 거짓말 듣고 낙심해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이 살아난다. 위기 인 것처럼 보여 사람들 흔들리는데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패한 것이 아니다. 요셉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노예로 가는 것은 애굽으로 가는 가장 지름길이 되는 것이고, 누명을 쓰고 감옥소 간 것은 정치인 을 만나는 가장 지름길이 된 것이다. 이 정치인이 요셉을 배신하고 잊어버린 그 것이 왕을 만나는 길이 되었다. 이것이 재창조다. 영적인 힘이 제대로 있으면 나 이도 상관없고 장소도 상관없다. 장애인인데 오히려 이것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앞을 못 보는 크로스비가 이것을 찾았는데 24가 되어버린 것이다.